[책 속 명문장] 미학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학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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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명문장] 미학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학문입니다
  • 한주희 기자
  • 승인 2024.03.05 1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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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나름대로 미학이라는 학문을 정의하는 것이 용납된다면 저는 반복해서 읊어 온 저 딱딱한 멘트에서 벗어나, 거기에서 심지어는 ‘미’와 ‘예술’이라는 단어까지도 빼버리고, 다음과 같이 말하려 합니다. 미학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학문’입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서 그 사실을 말해 보고자 합니다. <6쪽>

더 나아가 우리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수용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 삶이 주어진 한, 우리 모두가 예술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은 곧 무엇을 창조할 수 있다는 것과 동일합니다. 우리는 모두 주어진 일상을 받아들이고, 또 거꾸로 새로운 일상을 창조해 오지 않았습니까? 일상이 곧 예술이 된 워홀 이후의 세계에서, 우리는 이미 어떤 예술계의 승인도 받을 필요가 없이 이미 예술가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과연 예술가가 될 수 있느냐에 대한 의구심이 아니라, 창조하는 예술가이자 해석하는 미학자로서의 우리가 각자의 삶이라는 예술 작품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이면의 의미는 과연 무엇이 될지 자문하는 일이겠습니다. <57쪽>

진정 당신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리하여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나의 영토 안으로 ‘당신’이라는 소작농들이 낫과 곡괭이를 들고 침투하여 한때 내 것이었던 영지에 마구잡이로 깃발을 꼽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면, 나는 당신에게 저항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이러스와 병균의 침입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내 몸이 항체를 만들고 고열을 내는 것처럼, 나는 당신에게 저항하느라고 신열을 앓아야 합니다. <128쪽>

인간이 소외되지 않는 세상을 저는 꿈꿉니다. 요원한 생각이고 어쩌면 치기 어린 생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그 꿈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또 모르지요. 언젠가 바로 그 순간이 찾아올지도. (…) 그러나 그때가 언제일까요. 그것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술가들은 그 순간이 조만간인 것처럼 살아갑니다. 매 순간마다 그 순간이 찾아오고 후퇴하고 또 찾아오는 것이라고 믿으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들은 좌절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전위대를 암약하는 게릴라들입니다. <277쪽>

하지만 타인은 애초에 이해할 수 없는 자이며, 그런 자로 남아 있어야만 합니다. ‘너’는 ‘나’의 자기 발전과 성숙, 앎의 확장을 위해 투입되는 재료가 아닙니다. ‘너’는 ‘나’가 아니고, ‘나’였던 적이 한 번도 없으며, 끝까지 ‘나’가 아니어야만 합니다. ‘너’는 끝까지 낯설고 ‘나’와 다른, 하나의 인간입니다. 그러한 ‘너’가 내 앞에 떠오르는 그 순간들. 그 수많은 ‘너’들과 마주치는 매 순간들. 그것이 바로 현재입니다. <301쪽>

[정리=한주희 기자]

『조각조각 미학 일기』
편린 지음 | 미술문화 펴냄 | 416쪽 | 2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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