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을 그리며 자아에 다가갔던 화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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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을 그리며 자아에 다가갔던 화가들
  • 이세인 기자
  • 승인 2024.02.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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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은 내가 직접 그리기 때문에 내 인식과 자아를, 나아가 내가 걸어온 길을 보여줍니다”

대상의 얼굴을 그리는 일은 그 시간 동안 대상을 생각하는 일과 같다. 자화상을 그린다는 건 단순히 거울을 보는 것과 달리, 그리고 싶은 의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를 탐구하게 만든다. 끊임없이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야하기 때문이다. 눈동자부터 코끝, 입가 미소, 얼굴의 음영, 머리카락까지. 그림은 사진에서 전달되지 않는 무엇인가 다른 감각을 전달한다. 그만큼 대상을 세세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관찰할 수밖에 없다.

화가들은 자화상을 통해 나를 드러내고 들여다보며 과거, 현재, 미래의 내 모습을 그리기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보여준다. 꾸밈없는 시선으로 진솔한 감정을 찾아가는 여정, 그 여행길 끝에 다다르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스스로 답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 20일 김선현 작가는 서울 중구 순화동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순화동천에서 『자화상 내 마음을 그리다』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자화상을 주제로 한 책은 화가 57명, 그림 104점이 소개되어 있는 미술서로, 명화 속에서 ‘진정한 나’를 찾고자 하는 작가의 뜻이 담겨 있다.

책의 표지로 쓰인 그림은 작가가 애정하는 자화상인 타마라 드 렘피카의 「녹색 부가티를 탄 타마라」다. 작품을 보면 과감한 옷차림과 무심한 눈빛, 함께 그려진 쨍한 녹색 스포츠카에서 주체적인 여성의 당당함을 느낄 수 있다. 1920년대에 그려진 그림은 차를 운전하고, 스포츠를 즐기는 여성의 모습에서 당시 요구되던 전통적인 여성상이 파괴된 것을 알 수 있다. 더불어 남성이 전유하던 영역을 침범하고 나아가 남성과 여성의 동등함을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자화상은 화가를 둘러싼 시대적 배경과 주변 인물 등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한다. 렘피카처럼 자신의 명성에 대한 프라이드,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여자로서의 자신감을 표출함으로써 화가의 환경과 내면의 성장, 외적인 모습까지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은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정체성과 자아인식을 탐구하는 중요한 주제로 다뤄져 왔기 때문에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과 이해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김선현 작가는 책의 표지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요즘 너무 우울하잖아요. 특히 팬데믹 기간을 거치면서 다들 위축되고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아요. ‘내가 앞으로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안고 있는 분들에게 조금 더 당당하게, 자신감 있게 세상을 바라보라는 메세지를 담아봤어요”라고 전했다.

작가의 말처럼 자화상은 현대인들이 자기 인식과 자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바쁜 일상 속에서 차분하게 자신의 내면을 찾기 어려운 지금, ‘왜 그럴까?’라는 물음에 답함으로써 사회적 관계 사이의 갈등과 타협의 과정을 그리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자연스레 우리의 관심은 타인에게 쏠리게 된다. 다른 사람의 심리를 알고 싶은 마음은 무엇보다 나를 알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니까.

“우리가 MBTI에 열광하는 이유는 타인의 마음을 알고 싶어 하기 때문이에요. 짧은 시간 안에 여러 사람의 생각을 살펴보고 그 속에서 동질감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이러한 이유로 미술치료에서는 자화상을 많이 사용한다. 그림 속 인물이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해보거나 나를 그려본다는 건, 생략되고 누락된 과정을 재생시키는 것과 같다. 그 과정에서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고 외면하고픈 흉터를 발견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내 모습을 찬찬히 대면하다 보면 그간 보이지 않던 나만의 진짜 얼굴,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선현 작가는 “나를 알기 위해서는 지금의 나를 이해하고, 과거의 나를 끌어안은 후, 시시때때로 바뀌는 나를 통합적으로 아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래야 한 단계 성장하고 변신할 수 있죠”라며 “화가가 자화상을 통해 진정한 ‘나’를 만난 것처럼 독자 여러분도 명화 속에서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평범해 보이는 그림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면밀히 들여다보면 숨겨진 바가 있습니다. 자신이 겪고 있는 어려운 점을 말로 표현해내지 못하는 이들에게 그림으로 속의 이야기를 드러내게 하는 것이 미술치료입니다.

-『자화상 내 마음을 그리다』 中

[독서신문 이세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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